오사카여행 #1
오사카여행을 다녀왔다.근데 나는 현장(노는거)체질이라 이런성곽종류는 별로지만 일정에 맞춰 움직이기때문에 어쩔수 없었다.
<상공에서 바라본 오사카성 사진출처:저팬디스커버리>
오사카성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축조된(아즈치모모야마시대부터 에도시대)일본의 성입니다.보시는 바와같이 일단 수로로 둘러쌓여있고 그 깊이나 넓이는 어마어마합니다.적이 쳐들어올때 혼란을 야기시키기위하여 미로같이 성외곽을 지었다고 합니다.
이런구조의 성은 적이 쳐들어올래야 처들어올수가 없을것 같다.당시에 헬기나 비행기도 없던시대에 이런구조물은 적에게 쥐약이였을것 같다.밑에 악어 몇마리 풀어놓고 위에서 활쏘면 적은 절대 못쳐들어올것같다.
우리도 저렇게 경복궁을 지었더라면 명성황후는 시해 안될수도 있었을텐데,라고 생각해본다.
명성황후 시해사건: 1895년 음력 8월 20일 , 경복궁 안에 있는 건청궁 옥호루에서 명성황후는 일본 낭인들의 손에 처참하게 시해당했다. 시신마저 향원정의 녹원에서 불살라지는 수모를 당했다. 이것이 바로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사건)이다. 을미사변을 지휘한 것은 일본 정부의 지시를 받은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원래 출신이 미천하여 일본을 통치할 지배자가 될 만한 신분이 아니였다고 한다. 통일은 이루었지만 잦은 변란이 일어났고 이잦은 변란을 누그러 뜨리기 위해 전국의 무사들의 시선을 다른곳으로 돌릴꺼리가 필요했다.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그무언가가 필요했고 그무언가가 전쟁이였다.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중국 대륙 정복을 시도하였고, 그가는 길목에 있는 조선이있었다. 히데요시는 대마도주에게 명령하여 조선에게 명나라 정복을 위한 협조를 요청하였지만 4년 동안의 교섭이 실패로 돌아가자 1592년 조선을 침공하여 그유명한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히데요시는 출정군을 20만 명이 넘는 수군과 육군을 선두로 조선을 공격하였다.
한마디로 가는길목에 있으니까 그냥 깐거다.
가만보면 역사적인 전쟁을 일으킨 왕들을 보면 출신이 미천하거나, 어렸을때 가정사가 문제있는 집안이 많은것같다.히틀러도 일개 병사 출신이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그렇고,어렸을때 받았던 상처가 큰사람이 권력을 잡게되면 얼마나 무서운지 느끼게 된다.
오사카성 은 높이 55m, 8층높이의 누각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83년에 전국을 통일한 기념으로 축성한 성임. 잦은 변란으로 일부 건물들이 소실되기도 했다. 본디 없어진 누각을 1931년 부터 병풍에 그려진 그림을 바탕으로 다시축조한 성이 지금의 오사카성이다.
여행시간내내 묵직한 기분만 감돌았다.역사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지만 침통한 기분은 없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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