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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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s IT Tip/IT & Discovery

골프공

by 김대표 2017. 3. 19.

골프공은 다른공과는 달리 딱딱하고 표면이 매끄럽지 않다.조금 패인 홈이 수를 헤아릴수 없을 정도로 많다.왜골프공은 매끄럽지 않은 홈을 많이 파인 공을 사용할까. 골프공의 홈을 '딤플'이라 부른다. 딤플이란 의미는 '보조개'.'움푹들어간곳'뜻을 가지고 있다. 이 딤플은 골프에서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공을 헤드로 때렸을때 이 딤플이 공중에서 공기저항을 줄여 골프공이 하늘로 솟구쳐 멀리날아가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만약 골프공에 딤플이 없다면 공은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공기저항에 막혀 도중에 떨어져 버린다고 한다.딤플은 골프공에 추진력을 주어 표면의 난류로 공을더 멀리 보낸다.

 

 

 

 

 

 

골프의 역사를 보면 초창기부터 딤플이 있지 않았다고 한다. 딤플로 인해 멀리 날아갈수 있었던건 1800년 후반에 와서라고 한다.첫골프공은 나무로 만들어졌고 나무는 당연히 멀리 못날아갔고,물에 한번빠지면 금방썩어버려 도저히 골프공으로는 사용을 못했다. 그러나 영국에서 가죽공이 골프공으로 샀으나 가격이 무척 비쌋고 대량으로 제작할수 없다는 단점이 있어서 이또한 널리 사용되지 못했다고 한다. 규칙을 중시하는 골프에서는 딤플의 수를 제한하지 않았다.요즘판매되는 골프공들은 약250~405개의 딤플이 들어가 있다. 골프공의 크기가 일정하지 않아 딤플수가 많으면 딤플크기가 작고 딤플수가 적으면 딤플크기가 크다.골프공의 이러한 비밀이 있었다는걸 알고 있었는가.

 

 

골프에 대해서 더살펴보자면 누구나 다아는 박세리 선수가 있다.LPGA US오픈에서 '맨발투혼드라마를 쓴 박세리의 성공신화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2008년 무관에 그쳤지만 박세리는 여전히 골프유망주들 우리같은 일반인들에게 골프의 롤모델같은 존재다.박세리하면 생각나는 골프장면은 US오픈대회에서 해저드 언저리에 놓인 볼을 퍼팅하기 위해 신발과 양말을 벗는 명장면을 연출하여 우승을 차지했다.우리가 이토록 이장면에 열광하는 이유는 당시 IMF로 국민들은 몹시 힘든상태였지만 박세리의 그투혼으로 많은 사람들의 감동과 희망을 주게 되었다.

 

 

10년의 시간이 지나고 박세리는 나이 30세에 최연소로 LPGA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영예를 안았다. 한국인 1호이며 아시아 최초의 영광이다.LPGA 명예의 전당조건은 이 구글애드센스다는것 만큼 까다롭다.10년간 현역선수로 뛰어야 하며 메이저 대회에서도 우승해야하고 베어트로피, 올해의 선수상을 받아 포인트가 27점을 넘어야 명예의 전당 가입자격을 얻는다.이런 박세리는 한국인에게 큰희망을 안겨주었다.

 

박세리는 아버지의 권유로 초등학교시절에 골프채를 잡았다.거의 보면 부모의 역할이 크게 작용하는것같다.박지성도 아버지,김연아는 어머니,마이클조던도 아버지등등 훌륭한 운동선수들은 훌륭한 부모를 두었다.나는 초등학교때 육상선수로써의 권유를 받았다.당시 1학년,2학년 두번다 학년전체 1000M달리기 1,2등을 한성적때문이였을것이다. 당시 달리는게 좋았고 지는게 싫었다.이러한 나를 두고본 학교 육상선생님은 나를 거의 몇달을 거쳐 괴롭히면서 육상부에 들어오라고 하였다. 심지어는 공부하고 있는 나를 담임선생님이 있는데도 무시한채 ,문을 열고 들어와 엎드려 뻗쳐를 시키고 '너육상부에 들어올꺼야 말꺼야.'했다.당시나는 공부도 그렇게 하기싫은 체질이 아니였고 왠지 운동은 친구들과 멀어진다는 생각,운동은 나와는 다른세계에서 사는사람들이 하는거라 생각했다.그래서 나는 선생님의 괴롭힘이 싫어 부모님에게 부탁했다.난 하지못하겠다고 말이다. 그런데,지금 30이 넘은지금 아니 20세때도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그때 만약 육상으로 나갔다면 내인생은 어떻게 되있을까.지금은 평범한 회사원이다.흔히들 적성에 맞지 않고 밥벌이,돈벌이때문에 직장다니는 회사원,가끔 인센이나 주면 좋아하는 취미는 농구이고,성격 부적합탓에 클럽이나 여자나 좋아하는 평범한 날라리 회사원이다.그때 나를 알아본 그육상선생님은 진주를 본것이다.내가 잘났다는 것이 아니다.나는 나에게 진주라고 말한 멘토를 헛소리라 지껄이며 내팽겨치고,지금이렇게 살고 있을때,그냥 한심할때가 많다.어쩌다 주저리 주저리 마치 허지웅의 '버티는 삶에 관하여'같은 인생고백이 되어버렸지만,봐라.지금 내상황을 그때 육상선수로 뛰었더라면 지금나는 코묻은돈 애드센스에 가입하려고 새벽1시에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물론 아시아 육상은 발전이 없으니 육상에서 종목변경을 해서 말이다.누구나다 후회는 있고 그때 그랬을껄 할때가 있다.그런데 나는 그렇게 나를 초등학교2학년을 푸쉬업까지 시키면서 운동하라고 권유한 그는 정말 나말고도 다른 선수를 정말 훌륭하게 키워냈으리라 생각한다.아쉽고,만약 내가 크게 잘된다면 인사라도 드리고 싶다.'그때 죄송했어요.'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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